어떤 음악을 듣다가 “이 신스 소리 좋다”라는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조금 난감합니다.
기타라면 줄을 튕기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고, 피아노나 드럼도 대략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디사이저(synthesizer)는 하나의 대표적인 소리를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곡에서는 묵직한 베이스처럼 들리고, 다른 곡에서는 뒤에서 안개처럼 길게 깔립니다. 날카로운 멜로디를 연주하기도 하고, 짧은 음이 빠르게 반복되기도 합니다.
이게 신디사이저를 처음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디사이저에는 ‘이것이 신디사이저 소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음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신디사이저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음악을 들을 때 신디사이저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악기의 복잡한 회로부터 공부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소리부터 거꾸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네 가지 소리를 찾아보자
신디사이저가 들어간 음악을 듣다 보면 자주 만날 수 있는 역할이 있습니다.
베이스, 패드, 리드, 아르페지오.
이 네 가지가 신디사이저의 모든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 신스 사운드를 구별해서 듣기에는 좋은 출발점입니다.
1. 아래에서 묵직하게 움직인다면 — 신스 베이스
먼저 음악의 가장 낮은 곳을 들어봅니다.
둥— 둥둥— 둥—
베이스 기타처럼 낮은 음역을 담당하지만 소리가 조금 더 매끈하거나 전자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둥글고 부드럽고, 때로는 거칠고 공격적입니다.
신디사이저로 만든 이런 저음 역할을 흔히 신스 베이스(synth bass)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저음이 들린다고 전부 신스 베이스는 아닙니다.
베이스 기타일 수도 있고, 어쿠스틱 베이스일 수도 있으며, 샘플이나 다른 전자음원이 저음을 담당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808 역시 현대 음악에서 강한 저음을 만들지만 신스 베이스와 808을 언제나 같은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정확한 악기를 맞히려고 애쓰기보다 “지금 이 곡의 가장 아래를 움직이는 소리는 무엇일까?”부터 들어보는 편이 좋습니다.
2. 뒤에서 넓게 펼쳐진다면 — 패드
이번에는 베이스와 반대로 음악의 뒤쪽을 들어봅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멜로디가 또렷하게 기억되지는 않는 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우우웅——
길게 이어지면서 공간을 채우고, 코드와 분위기를 만드는 소리입니다.
이런 역할의 신스 사운드를 흔히 패드(pad)라고 합니다.
패드는 앞에 나서기보다 음악의 배경을 넓게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보컬이나 드럼만 따라가며 들으면 존재를 놓치기도 합니다.
패드를 찾아보고 싶다면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이나 보컬이 잠시 멈추는 부분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평소에는 목소리 뒤에 숨어 있던 긴 소리가 갑자기 선명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신스 패드가 빠졌다고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같은 보컬과 드럼이 남아 있어도 곡이 갑자기 비어 보일 것 같다면, 그 패드가 음악의 공간을 상당 부분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멜로디가 앞으로 튀어나온다면 — 리드
신디사이저가 항상 배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타 솔로처럼 곡의 앞에서 멜로디를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흔히 신스 리드(synth lead)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리드의 음색은 매우 다양합니다.
가늘고 날카롭게 뻗을 수도 있고, 두껍게 휘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고, 현실의 어쿠스틱 악기에서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전자적인 음색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스 리드를 들을 때는 “신디사이저는 원래 이런 소리구나”라고 기억하는 것보다,
“지금 신디사이저가 멜로디를 담당하고 있구나.”
라고 역할을 구분하는 편이 좋습니다.
4.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된다면 — 아르페지오
전자음악이나 신스가 많이 사용된 팝을 듣다 보면 짧은 음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따-따-따-따 / 따-따-따-따
여러 음을 동시에 누르는 코드와 달리 코드의 음을 하나씩 펼쳐 연주하는 방식을 아르페지오(arpeggio)라고 합니다.
신디사이저에서는 아르페지에이터(arpeggiator) 기능을 이용해 이런 반복 패턴을 만들기도 합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무조건 같은 패턴이 만들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음을 넣고 어떤 순서와 속도, 범위로 반복하도록 설정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우선 “짧은 전자음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곡에 추진력을 만드는 부분”을 찾아보면 아르페지오형 신스 패턴을 발견하기 쉽습니다.
🎧 이번에는 실제 곡에서 찾아보자
신디사이저는 설명만 읽는 것보다 음악을 직접 듣는 편이 훨씬 빠르게 이해됩니다.
이번에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필요 없이 성격이 다른 다섯 곡만 골라보겠습니다.
Donna Summer – I Feel Love
첫 번째는 이전 디스코 글에서도 등장했던 곡입니다.
1977년 발표된 Donna Summer의 I Feel Love에서 Giorgio Moroder의 전자적인 프로덕션은 곡의 핵심입니다.
처음에는 보컬보다 아래에서 반복되는 신스 패턴에 집중해보세요.
전통적인 밴드의 리듬 섹션과는 다른 반복적인 전자음의 움직임이 곡 전체를 끌고 갑니다.
이 곡을 앞서 쓴 디스코 글과 연결하면 신디사이저가 댄스 음악의 소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라는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Gary Numan – Cars
이번에는 Cars를 들어봅니다.
곡을 시작하자마자 신디사이저의 존재를 알아차리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여기서는 신스를 배경 장식으로만 사용하기보다 곡의 정체성을 만드는 전면적인 요소로 들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곡에서 반복되는 흐름을 들었다면 이번에는 앞으로 나오는 신스 멜로디와 음색에 집중해보세요.
Van Halen – Jump
신디사이저가 전자음악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Van Halen의 Jump를 재생하면 도입부부터 강한 신스 사운드가 등장합니다.
기타 중심의 록 밴드라는 이미지와 신디사이저가 함께 존재하는 사례라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신스가 특정 장르만의 악기가 아니라는 것을 귀로 확인하기 좋은 곡입니다.
a-ha – Take On Me
Take On Me에서는 신디사이저가 1980년대 팝의 밝고 선명한 색을 만드는 데 어떻게 사용되는지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 가지 소리만 찾지 말고 신스가 리듬과 멜로디를 어떻게 함께 채우는지 들어보세요.
같은 신디사이저 계열의 소리라도 앞에서 들었던 I Feel Love와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신디사이저는 하나의 음색을 재생하는 악기가 아니라 소리를 설계할 수 있는 악기이기 때문입니다.
The Weeknd – Blinding Lights
마지막에는 훨씬 최근의 팝으로 이동합니다.
Blinding Lights는 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신스 중심의 사운드를 현대적인 팝 프로덕션 안에서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앞의 곡들을 듣고 이 곡으로 넘어오면 신디사이저가 특정 시대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소리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시 해석되며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디사이저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소리를 만들까?
여기까지 들었다면 오히려 새로운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피아노는 피아노 소리가 나고 기타는 기타 소리가 나는데, 신디사이저는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synthesize, 즉 소리를 합성한다는 개념을 생각하면 됩니다.
신디사이저는 전기적 또는 디지털 방식 등을 이용해 소리를 생성하고 그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감산 합성 신디사이저를 예로 들면 먼저 오실레이터(oscillator)가 기본적인 파형을 만들어냅니다.
대표적으로 사인파, 삼각파, 톱니파, 사각파 같은 파형이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필터(filter)를 이용해 특정 주파수 영역을 줄이거나 강조하는 방식으로 음색을 변화시키고, 엔벌로프(envelope)를 이용하면 소리가 시작되고 커지고 줄어들고 사라지는 시간적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LFO 같은 기능을 이용해 음높이·필터·음량 등에 반복적인 변화를 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처음 신디사이저를 듣는 사람이라면 이 용어들을 전부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신디사이저에서는 소리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바꿔 서로 다른 음색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신디사이저를 사용해도 설정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신스 소리’라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신디사이저 이야기를 조금만 찾아보면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디지털 신디사이저라는 표현도 자주 만납니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전자 회로를 이용해 신호를 생성하고 처리하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디지털 신디사이저는 디지털 방식으로 소리를 생성하거나 처리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단순한 공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날로그 = 따뜻한 소리
디지털 = 차가운 소리
처럼 음색을 두 단어로 나누는 설명은 실제 신디사이저의 다양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악기의 설계 방식과 합성 방식, 연주와 프로그래밍, 이펙트와 믹싱 등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소프트웨어로 과거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특성을 재현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어느 쪽이 ‘더 좋은 소리’인지 판단하기보다 소리를 만드는 방식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 정도를 기억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신스인지 아닌지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
음악을 오래 들으면 악기 소리를 정확하게 맞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디사이저는 특히 그렇게 접근하면 어렵습니다.
실제 악기를 닮도록 만든 신스 음색도 있고, 여러 소리를 겹쳐 만든 경우도 있으며, 샘플과 신디사이저가 함께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의 음악 제작에서는 하나의 소리가 여러 처리 단계를 거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건 무슨 모델의 어떤 신디사이저다.”
라고 맞히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한 곡을 틀어놓고 이렇게 나눠 들어봅니다.
아래에서 저음을 담당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뒤에서 길게 공간을 채우는 소리가 있는가?
앞에서 멜로디를 연주하는 전자적인 소리는 무엇인가?
짧은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만 가지고도 전에는 하나로 들리던 곡이 여러 층으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신스가 들어간 노래”라는 말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신스 베이스가 들린다.
패드가 뒤를 채우고 있다.
리드 신스가 멜로디를 가져간다.
아르페지오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
그때부터 신디사이저는 막연한 ‘전자음’이 아니라 음악 속에서 실제 역할을 가진 악기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 한 곡만 다시 들어본다면
새로운 노래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
평소 자주 듣던 곡 하나를 재생하고 보컬을 잠시 덜 따라가 보세요.
먼저 가장 낮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다음 음악의 뒤쪽에서 길게 이어지는 소리를 찾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반복되거나 멜로디를 만드는 전자적인 음색이 있는지 들어봅니다.
신디사이저가 없는 곡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신디사이저라는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평소 한 덩어리로 듣던 음악에서 서로 다른 소리의 역할을 찾아보는 것이니까요.
신디사이저를 그렇게 한번 듣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더 세밀한 질문이 생깁니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이 신스 베이스입니다.
베이스 기타와 같은 낮은 음을 담당하면서도 소리가 꽤 다르게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음악에서 베이스 기타와 신스 베이스를 어떻게 구별해서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은 다음에 소리를 듣다에서 별도의 글로 충분히 다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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