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잘 안 들리는데, 사라지면 바로 느껴지는 소리
좋아하는 노래를 이어폰으로 듣다가 이번에는 보컬이나 멜로디 대신 가장 낮은 곳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집중해봅니다.
둥— 둥둥— 둥—
분명히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금 들리는 게 무슨 악기지?”라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곡에서는 줄을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어떤 곡에서는 둥글고 매끈한 저음이 바닥을 채웁니다. 아주 낮은 음에서는 악기의 정체보다 진동부터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 저음의 주인공은 베이스 기타(bass guitar)일 수도 있고 신스 베이스(synth bass)일 수도 있습니다.
둘은 음악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을 수 있지만 소리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이번에는 악기의 정의부터 외우지 않고 둘을 번갈아 들어보면서 차이를 찾아보겠습니다.
베이스 기타와 신스 베이스를 먼저 나란히 놓아보면
가장 큰 차이는 소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베이스 기타는 실제 줄의 진동에서 출발합니다.
연주자가 손가락이나 피크 등으로 줄을 튕기면 줄이 진동하고, 픽업이 이를 전기 신호로 받아 앰프와 스피커 등을 거쳐 소리가 납니다.
반면 신스 베이스는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만든 베이스 역할의 소리입니다.
신디사이저가 생성한 파형을 바탕으로 음색을 설계할 수도 있고, 여러 합성 방식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간단히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 베이스 기타 | 신스 베이스 |
|---|---|
| 줄의 진동에서 소리가 시작됨 | 신디사이저에서 소리를 생성 |
| 연주자의 손가락·피크·주법이 음색에 영향을 줌 | 파형·필터·엔벌로프 등 설정에 따라 음색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음 |
| 줄을 튕기는 어택과 자연스러운 감쇠가 나타날 수 있음 | 어택과 음의 길이를 폭넓게 설계할 수 있음 |
| 슬랩, 핑거링, 피킹 등 주법 차이가 큼 | 부드러운 저음부터 공격적인 전자 저음까지 범위가 넓음 |
표만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음악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베이스 기타에도 이펙트를 걸 수 있고 신디사이저는 실제 악기와 비슷한 음색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여러 저음을 겹쳐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자적으로 들리면 무조건 신스 베이스” 같은 공식으로 구별하면 금방 예외를 만납니다.
귀로 들을 때는 다른 단서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단서: 음이 시작되는 순간을 들어본다
저음 전체를 들으려고 하면 베이스 기타와 신스 베이스가 잘 구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음이 시작되는 아주 짧은 순간, 즉 어택(attack)에 집중해봅니다.
베이스 기타에서는 줄을 튕겼을 때 생기는 물리적인 느낌이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툭—
연주 방법에 따라 손가락이 줄을 건드리는 느낌이나 피크의 선명한 어택이 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슬랩 베이스는 더욱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줄을 강하게 때리거나 튕기는 주법 때문에 특유의 타격감이 나타납니다.
반면 신스 베이스는 소리의 시작을 훨씬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웅——
처럼 부드럽게 시작할 수도 있고,
뿅!
처럼 짧고 강하게 튀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스 베이스는 특정한 어택을 가지고 있다고 외우기보다 “소리의 시작 자체를 전자적으로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두 곡을 연달아 들어보자
차이를 글로만 설명하면 결국 ‘줄 소리와 전자음의 차이’ 정도로 끝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두 곡을 연달아 들어보는 편이 좋습니다.
Chic – Good Times
먼저 Chic의 Good Times를 들어봅니다.
Bernard Edwards의 베이스 라인은 이 곡의 중심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보컬과 기타를 따라가지 말고 베이스만 찾아보세요.
저음이 단순히 아래에서 길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짧은 음과 쉼을 이용해 리듬을 만들며 움직이는 모습이 들립니다.
한 음 한 음의 시작과 끝도 들어봅니다.
베이스 기타가 드럼과 함께 그루브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느껴보기 좋은 예입니다.
그리고 이 베이스 라인은 이후 대중음악과 힙합의 역사에서도 흥미로운 연결점을 갖습니다. 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가 Good Times의 베이스 라인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베이스 소리를 따라갔는데 자연스럽게 디스코와 초기 힙합의 연결까지 보이는 셈입니다.
Donna Summer – I Feel Love
이번에는 Donna Summer의 I Feel Love로 넘어갑니다.
앞의 신디사이저 글에서도 등장했던 곡입니다.
여기서는 Giorgio Moroder가 만든 반복적인 전자적 저음과 패턴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Good Times에서 들었던 베이스 기타의 물리적인 연주감과 비교하면 질감이 상당히 다릅니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저음이 매우 규칙적으로 음악의 흐름을 만들어갑니다.
두 곡을 연달아 들으면 ‘베이스’라는 단어가 반드시 하나의 악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베이스는 낮은 음역과 역할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서: 음이 사라지는 방법을 들어본다
소리가 시작되는 순간을 들었다면 이번에는 끝나는 순간을 들어봅니다.
베이스 기타의 줄을 튕기면 진동이 생긴 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연주자는 손으로 줄을 막아 음을 짧게 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베이스 연주에서는
둥— / 둥 / 둥둥—
처럼 음마다 길이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신스 베이스에서는 이 부분도 적극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신디사이저의 엔벌로프(envelope) 설정 등을 이용하면 건반을 누른 뒤 소리가 얼마나 빨리 시작되고, 유지되고, 사라지는지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짧게 끊기는 베이스도 만들 수 있고, 길게 이어지는 저음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스 베이스를 들을 때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실제 악기의 물리적인 구조에 덜 묶여 있기 때문에 저음의 모양 자체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808은 신스 베이스일까?
howmyheartsings에서 앞서 다룬 808 사운드를 기억한다면 여기서 헷갈릴 수 있습니다.
현대 힙합이나 트랩에서 들리는 길고 낮은 808도 베이스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808과 신스 베이스는 같은 말일까요?
완전히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원래 808이라는 이름은 Roland가 1980년에 출시한 TR-808 Rhythm Composer에서 시작됐습니다.
TR-808에는 킥, 스네어, 하이햇, 클랩 등 여러 드럼 사운드가 있었고 그중 킥의 독특한 저음이 이후 음악에서 중요한 재료가 됐습니다.
현대의 힙합과 트랩에서는 이 808 킥에서 이어진 길고 낮은 베이스성 사운드를 흔히 ‘808’이라고 부릅니다. 음높이를 조절하고 길게 늘이거나 슬라이드시키면서 사실상 베이스 라인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귀에는 신스 베이스와 비슷한 역할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이스 기타 = 하나의 악기
신스 베이스 = 신디사이저로 만든 베이스 역할의 소리
808 = TR-808의 계보에서 발전한 특정한 저음 사운드를 가리키는 음악 제작상의 표현
정도로 구분해두면 처음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실제 현대 프로덕션에서는 경계가 더 복잡해질 수 있으므로 이름만으로 소리의 제작 방식을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베이스 기타와 신스 베이스가 함께 나올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 제작에서는 서로 다른 저음을 레이어(layer)로 겹쳐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이스 기타가 리듬과 연주감을 만들고 그 아래에 신스의 낮은 주파수를 더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스 베이스가 중심을 담당하면서 다른 베이스 소리를 겹쳐 질감을 보강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음악을 듣고 단번에 각각의 소리를 분리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 음악을 들을 때 무조건 악기 하나의 이름을 맞히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대신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저음의 시작에 줄을 튕기는 느낌이 있는가?
음마다 미세하게 다른 연주감이 느껴지는가?
저음이 매우 매끈하고 일정하게 이어지는가?
음높이가 미끄러지듯 이동하는가?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저음이 겹쳐 있는 것처럼 들리는가?
하나의 단서로 정답을 결정하지 않고 여러 특징을 함께 들어보는 것입니다.
🎧 저음만 따라가 보는 5곡
이번 글은 별도의 플레이리스트 대신 다섯 곡을 순서대로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1. Chic – Good Times
들을 것: Bernard Edwards의 베이스 기타
음의 시작과 끝, 쉼을 이용하는 방식에 집중합니다.
2. Stevie Wonder – Superstition
들을 것: 베이스와 클라비넷을 포함한 저역·리듬의 관계
여기서는 특히 악기들이 서로 맞물리며 그루브를 만드는 방식을 들어보세요. 낮게 들린다고 모두 베이스 기타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점도 좋은 청취 포인트입니다.
3. Donna Summer – I Feel Love
들을 것: 반복적인 신스 기반의 저음 패턴
앞의 곡들과 질감을 비교합니다.
4. New Order – Blue Monday
들을 것: 전자적인 베이스와 시퀀싱의 반복감
신디사이저와 드럼머신이 만드는 기계적인 정밀함을 함께 들어봅니다.
5. The Weeknd – Blinding Lights
들을 것: 현대 팝 안의 신스 중심 저역과 전자적 질감
과거의 신스 음악 어법이 현대 팝에서 어떻게 다시 들리는지 비교해봅니다.
다섯 곡을 한꺼번에 분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Good Times → I Feel Love 두 곡만 연달아 들어도 충분합니다.
베이스 기타와 신스 기반 저음의 질감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찾아보는 것이 이번 글의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음과 킥을 혼동하지 말자
베이스를 찾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킥 드럼(kick drum)입니다.
킥 역시 음악의 낮은 주파수 영역에서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은 스피커나 복잡한 믹스에서는 베이스와 하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둘의 기본적인 역할은 다릅니다.
킥은 일반적으로 드럼의 한 요소로서 리듬의 타격점을 만듭니다.
반면 베이스는 낮은 음역에서 리듬뿐 아니라 음높이를 가진 베이스 라인과 화성적 움직임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 음악에서는 킥과 베이스의 경계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본 808처럼 킥에서 출발한 소리가 길게 늘어나 베이스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이어서 들어볼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내가 지금 ‘쿵’ 하고 듣는 저음은 킥일까, 베이스일까?
이 둘을 구별하기 시작하면 드럼과 베이스가 어떻게 서로 자리를 나누고 음악의 바닥을 만드는지도 훨씬 잘 들리기 시작합니다.
한 번에 악기를 맞히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베이스 기타와 신스 베이스를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색을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반복해서 듣는 것입니다.
베이스 기타에서는 줄과 연주자의 손에서 비롯되는 움직임을 찾을 수 있고, 신스 베이스에서는 설계된 파형과 엔벌로프가 만드는 훨씬 다양한 저음의 형태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음악에서는 이 둘이 이펙트와 레이어링을 거쳐 비슷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보다 좋아하는 곡에서 보컬을 잠시 내려놓고 가장 낮은 소리 하나만 따라가 보세요.
그 소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한 덩어리였던 음악에서 드럼과 베이스, 신디사이저가 조금씩 떨어져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게 소리를 듣다에서 해보려는 가장 중요한 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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