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앱에서 R&B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보면 꽤 다양한 음악이 나옵니다.
부드러운 보컬 위로 전자적인 비트가 흐르는 곡도 있고, 드럼과 베이스의 그루브가 강한 음악도 있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피아노와 브라스가 중심이 된 오래된 음악까지 R&B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울을 찾아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R&B와 소울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둘을 완전히 분리된 장르처럼 생각하면 설명이 잘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같은 음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의 소리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R&B라는 이름이 먼저 어떻게 등장했고, 그 안에서 소울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R&B는 처음부터 지금 같은 음악이 아니었다
요즘 R&B라고 하면 매끄러운 보컬과 여유 있는 비트, 현대적인 프로덕션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R&B의 역사는 훨씬 오래됐습니다.
R&B는 Rhythm and Blues, 리듬 앤 블루스의 줄임말입니다.
이 용어는 1940년대 후반 미국 음악 산업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빌보드의 제리 웩슬러가 기존에 사용되던 인종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분류 명칭을 대신해 Rhythm & Blues라는 표현을 사용한 일이 R&B라는 용어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당시 R&B라고 불린 음악은 오늘날 우리가 R&B라고 부르는 음악과 상당히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블루스의 흔적이 강했고 피아노, 색소폰, 기타와 리듬 섹션이 중심이 됐습니다. 재즈와 가스펠의 영향도 섞여 있었습니다.
루스 브라운(Ruth Brown), 레이 찰스(Ray Charles) 같은 음악가의 초기 음악을 들어보면 현대적인 R&B 플레이리스트와는 꽤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R&B를 이해할 때 첫 번째로 기억할 것은 이것입니다.
R&B는 특정한 하나의 소리를 가리키며 멈춰 있었던 장르가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 이름 아래 들어가는 음악도 계속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소울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로 넘어가면 R&B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도 조금 다른 음악이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소울(Soul)입니다.
소울을 이해할 때 중요한 음악적 뿌리 가운데 하나가 가스펠(Gospel)입니다.
미국 흑인 교회의 가스펠 음악에서는 강한 감정 표현, 콜 앤드 리스폰스, 손뼉과 리듬, 즉흥적인 보컬 표현 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가스펠의 표현 방식이 세속적인 가사와 R&B의 리듬을 만나면서 소울 음악의 중요한 기반이 됐습니다.
그래서 초기 소울을 듣다 보면 노래하는 방식에서 교회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노래하면 다른 목소리나 악기가 응답하고, 보컬은 악보에 적힌 멜로디를 얌전히 따라가기보다 음을 밀고 당기며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Ray Charles의 〈I Got a Woman〉 같은 초기 녹음은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사례로 자주 이야기됩니다.
가스펠에서 익숙했던 음악적 요소가 세속적인 R&B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R&B라는 큰 흐름 속에서 가스펠의 표현과 흑인 대중음악의 여러 전통이 강하게 결합하면서 소울이라는 뚜렷한 음악적 정체성이 성장했다고 이해하면 조금 쉬워집니다.
소울에는 왜 목소리가 그렇게 중요할까?
소울을 처음 들을 때 가장 먼저 귀를 붙잡는 것은 보통 보컬입니다.
Sam Cooke, Aretha Franklin, Otis Redding, Wilson Pickett, Marvin Gaye 같은 음악가를 들어보면 같은 소울 안에서도 목소리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노래를 단순히 정확하게 부르는 것보다 말하듯 밀고 당기고, 외치고, 호흡하고, 감정을 소리 자체에 실어 보내는 방식입니다.
Aretha Franklin의 음악을 들어보면 한 구절 안에서도 목소리의 강도가 계속 달라집니다.
Otis Redding은 거칠고 절박한 방향으로 감정을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Sam Cooke의 목소리는 훨씬 부드럽게 흐릅니다.
그래서 소울을 단순히 ‘감성적인 노래’라고 정의하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칩니다.
발라드도 감성적이고 록도 감성적일 수 있으니까요.
소울의 중요한 특징은 가스펠과 R&B에서 이어진 보컬 표현, 리듬과 그루브, 그리고 그것을 연주하는 밴드가 함께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습니다.
모타운과 스택스를 비교하면 소울 안의 차이도 들린다
소울 자체도 하나의 소리만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두 레이블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꽤 재미있게 들립니다.
하나는 디트로이트의 Motown Records입니다.
The Supremes, The Temptations, Marvin Gaye, Stevie Wonder 같은 음악가들이 모타운과 함께했습니다.
모타운은 소울과 R&B를 대중적인 팝 시장까지 넓게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강한 리듬과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정교한 편곡을 갖춘 음악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멤피스에는 Stax Records가 있었습니다.
Otis Redding, Booker T. & the M.G.’s, Sam & Dave 같은 음악가와 연결되는 곳입니다.
스택스의 음악에서는 보다 거칠고 직접적인 밴드 연주와 남부 소울의 성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레이블의 음악을 번갈아 들어보면 재미있습니다.
둘 다 소울인데 똑같지 않습니다.
장르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이름 하나를 외우는 것보다 그 이름 안에서도 소리가 얼마나 다양했는지 듣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R&B와 소울의 차이는 정확히 무엇일까?
여기까지 왔다면 조금 이상한 결론에 도착합니다.
둘 사이에 자를 대고 선 하나를 긋기가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 소울은 R&B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성장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음악가는 R&B 아티스트이면서 소울 아티스트로도 분류됩니다.
둘을 비교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편합니다.
R&B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크게 변해온 넓은 음악적 범주이고, 소울은 그 역사 속에서 가스펠의 표현과 R&B의 리듬이 강하게 결합하며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한 음악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판별 공식은 아닙니다.
“가스펠 느낌이 60% 이상이면 소울.”
이런 측정기는 세상에 없습니다.
실제 음악은 계속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음반 회사와 라디오, 차트에서 사용하는 장르 분류도 음악가의 창작 방식과 언제나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R&B와 소울 사이에는 상당히 넓은 겹치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요즘 R&B는 왜 옛날 R&B와 이렇게 다를까?
여기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1960년대 R&B와 2020년대 R&B를 연달아 틀어보면 같은 장르 이름을 붙여도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수십 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R&B는 소울과 훵크, 디스코를 비롯한 흑인 대중음악의 변화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 등 전자적인 제작 방식의 비중이 커졌고,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는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같은 스타일도 등장했습니다.
힙합의 영향도 점점 중요해졌습니다.
1990년대 R&B를 들어보면 드럼머신과 샘플링, 힙합에서 온 리듬 감각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전자음악과 팝, 힙합 등과의 경계가 더욱 유연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R&B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소리와 1940~50년대의 Rhythm and Blues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름은 살아남았지만 그 이름 안의 음악은 계속 움직인 것입니다.
현대 R&B와 네오 소울은 또 무엇이 다를까?
R&B와 소울을 찾아보다 보면 거의 반드시 Neo Soul이라는 이름도 만나게 됩니다.
네오 소울은 특히 1990년대에 뚜렷하게 부각된 흐름입니다.
D’Angelo, Erykah Badu, Maxwell 같은 음악가들이 자주 언급됩니다.
이 음악에서는 1960~70년대 소울과 훵크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단순한 복고 음악은 아닙니다.
힙합의 리듬과 현대적인 프로덕션, 재즈적인 화성 등이 함께 들어옵니다.
D’Angelo의 음악을 들어보면 드럼과 베이스가 기계처럼 정확히 박자 위에 놓이기보다 미묘하게 밀리고 당겨지는 듯한 그루브를 느낄 수 있습니다.
Erykah Badu에서는 소울과 재즈, 힙합이 만나는 지점이 들립니다.
흥미로운 것은 네오 소울이라는 이름 자체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소울’입니다.
음악 장르는 오래된 장르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식으로만 발전하지 않습니다.
예전 음악을 다시 바라보고 현재의 제작 방식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이름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R&B와 소울을 귀로 구분하려면 무엇을 들어야 할까?
정답 맞히기 게임처럼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시대를 나눠서 비교하면 훨씬 잘 들립니다.
먼저 1950년대 R&B를 들어봅니다.
그다음 1960년대 소울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1970년대 소울과 훵크, 1990년대 R&B와 네오 소울, 마지막으로 현대 R&B를 들어보세요.
그러면 장르 사이의 경계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들립니다.
이어지는 것과 바뀌는 것입니다.
목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은 이어지는데 드럼 소리가 달라집니다.
그루브는 남아 있는데 악기가 전자적으로 바뀝니다.
가스펠에서 온 표현이 현대적인 프로덕션 안에서도 모습을 바꿔 나타납니다.
R&B와 소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둘을 억지로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듣는 것입니다.
다섯 곡으로 차이를 따라 들어보기
이번 글에서는 별도의 20곡 플레이리스트보다 우선 시대별 다섯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방식이 잘 어울립니다.
- Ray Charles — I Got a Woman
초기 R&B와 가스펠의 만남을 들어봅니다. - Sam Cooke — A Change Is Gonna Come
소울 보컬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들어봅니다. - Aretha Franklin — Respect
보컬과 밴드의 리듬이 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들어봅니다. - D’Angelo — Brown Sugar
과거의 소울이 1990년대 R&B와 힙합의 감각을 만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들어봅니다. - Erykah Badu — On & On
소울, 재즈와 힙합의 경계가 흐려지는 네오 소울의 감각을 들어봅니다.
이 다섯 곡은 ‘R&B 곡과 소울 곡을 정확히 분류하기 위한 시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차례대로 들어보면 왜 두 장르를 완전히 분리해서 설명하기 어려운지가 귀로 느껴집니다.
마무리
R&B와 소울은 비슷해서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헷갈립니다.
R&B라는 이름은 194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며 여러 형태의 흑인 대중음악을 아우르는 중요한 범주가 되었고, 그 흐름 속에서 가스펠의 표현과 리듬 앤 블루스가 만나 소울이 강한 정체성을 만들어갔습니다.
이후 소울은 훵크와 디스코를 비롯한 새로운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고, R&B 역시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 힙합과 현대적인 프로덕션을 받아들이며 계속 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R&B와 1950년대 R&B는 아주 다르게 들립니다.
그렇다고 둘 사이의 역사가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된 음악을 듣고 현대 R&B로 돌아오면 예전에는 지나쳤던 것이 들릴 때가 있습니다.
보컬이 한 음을 밀어 올리는 방식.
뒤에서 반복되는 베이스.
드럼이 만드는 미묘한 그루브.
장르의 이름은 바뀌고 의미도 변하지만 음악 안에는 이전 시대의 흔적이 계속 남습니다.
R&B와 소울의 차이를 아는 재미도 결국 그 흔적을 찾아 듣는 데 있습니다.
FAQ
Q. R&B와 소울은 같은 장르인가요?
완전히 같은 장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합니다. R&B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크게 변해온 넓은 음악적 범주이며, 소울은 R&B와 가스펠을 비롯한 흑인 음악 전통이 결합하면서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뚜렷하게 성장한 음악입니다.
Q. R&B는 Rhythm and Blues의 줄임말이 맞나요?
네. R&B는 Rhythm and Blues의 줄임말입니다. 다만 오늘날 R&B라고 불리는 음악의 소리는 초기 Rhythm and Blues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같은 이름만 보고 같은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헷갈릴 수 있습니다.
Q. 네오 소울은 소울인가요, R&B인가요?
둘 중 하나로만 깔끔하게 나누기 어렵습니다. 네오 소울은 과거 소울과 훵크의 영향을 현대 R&B, 힙합, 재즈 등의 요소와 결합한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R&B와 소울 양쪽 맥락에서 함께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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