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일은 정말 간단해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열고 곡을 검색하면 몇 초 안에 음악이 나옵니다. 앨범 한 장을 사기 위해 음반 가게에 갈 필요도 없고, 듣고 싶은 곡이 어느 음반에 들어 있는지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하나면 수많은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죠.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음악 듣기가 이렇게 편리해진 시대에 오히려 바이닐(Vinyl)을 찾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난 것입니다. 새 앨범을 발표하면서 바이닐 버전을 함께 내놓는 뮤지션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오래전에 발매된 앨범이 새로운 바이닐로 재발매되기도 합니다.
바늘을 올려야 하고, 한 면이 끝나면 판을 뒤집어야 하고, 원하는 곡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도 번거로운 매체.
대체 사람들은 왜 다시 이런 불편한 물건을 찾는 걸까요?
바이닐은 사라졌다가 갑자기 돌아온 것일까?
먼저 바이닐이 정말 완전히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부활한 것은 아닙니다.
LP를 비롯한 레코드는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중요한 매체였습니다. 하지만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보급되고 이후 디지털 음원과 스트리밍이 음악 소비의 중심이 되면서 대중적인 위치는 크게 줄어들었죠.
그렇다고 레코드를 듣는 문화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DJ 문화와 일부 음악 장르에서는 바이닐이 계속 사용됐고, 오래된 음반을 수집하거나 아날로그 재생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바이닐 판매가 다시 성장하면서 더 이상 소수 수집가만의 취미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음악을 듣는 방식이 디지털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바이닐이 가진 반대쪽의 특징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흥미롭습니다.
음악이 다시 ‘물건’이 된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들으면 실제로 손에 남는 것은 없습니다.
앨범 커버도 대부분 스마트폰 화면 속 작은 이미지로 만나게 되고, 한 곡을 듣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바이닐은 정반대입니다.
레코드를 꺼내고,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야 음악이 시작됩니다. 한 면의 재생이 끝나면 직접 판을 뒤집어야 하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번거로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음악을 틀기 전에 해야 하는 행동이 생기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하나의 작은 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앨범이라는 물건 자체도 중요합니다.
12인치 LP의 커버는 CD나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큽니다. 앨범 아트워크를 크게 볼 수 있고, 음반에 따라 가사집이나 라이너 노트, 사진, 포스터 같은 구성물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스트리밍에서는 몇 번의 터치로 지나쳤던 앨범이 바이닐에서는 꺼내보고, 뒤집어보고, 보관하는 물건이 되는 셈입니다.
음악을 소유한다는 감각이 다시 생깁니다.
한 곡보다 ‘앨범’을 듣게 되는 방식
바이닐의 재미는 음악을 듣는 순서에도 있습니다.
스트리밍에서는 플레이리스트와 셔플 재생이 익숙합니다. 좋아하는 곡만 골라 듣는 것도 아주 쉽죠.
레코드도 원하는 트랙을 찾아 바늘을 옮길 수는 있습니다. 다만 스마트폰에서 다음 곡 버튼을 누르는 것만큼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A면과 B면이라는 물리적인 구분도 생깁니다.
아티스트와 제작자가 어떤 곡을 첫 곡에 놓았는지, A면을 어떤 곡으로 끝냈는지, 판을 뒤집은 뒤 B면을 어떻게 시작하는지가 실제 청취 과정에 영향을 줍니다.
앨범의 곡 순서가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물론 바이닐을 듣는다고 모든 사람이 앨범 전체를 진지하게 감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경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매체의 구조 자체가 음악을 조금 천천히 듣게 만든다는 점은 스트리밍과 확실히 다른 경험입니다.
바이닐은 정말 디지털보다 소리가 좋을까?
바이닐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LP가 디지털보다 음질이 더 좋은가요?”
간단하게 한쪽이 무조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바이닐과 디지털은 소리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방식이 다르고, 우리가 실제로 듣게 되는 결과에는 여러 조건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앨범이라도 어떤 마스터를 사용했는지, 바이닐이 어떻게 커팅되고 프레싱됐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턴테이블, 카트리지, 스타일러스, 포노 앰프와 스피커 같은 재생 장비도 영향을 줍니다.
반대로 디지털 음원도 포맷과 마스터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죠.
그래서 “바이닐이 아날로그니까 무조건 더 따뜻하고 좋은 소리다” 라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바이닐에는 바이닐 특유의 재생 경험이 있습니다.
바늘이 홈을 따라 움직이고, 레코드의 상태에 따라 작은 표면 잡음이 들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요소까지 음악을 듣는 재미의 일부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불편한 잡음일 수도 있습니다.
취향이 개입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레코드판의 저 가느다란 홈에는 대체 어떻게 음악이 들어 있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꽤 신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따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스트리밍과 바이닐은 꼭 경쟁 상대일 필요가 없다
바이닐이 다시 주목받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스트리밍을 버리고 레코드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두 방식은 오히려 함께 사용하기 좋습니다.
스트리밍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정말 마음에 든 앨범은 바이닐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레코드숍에서 우연히 발견한 음반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스트리밍으로 먼저 들어볼 수도 있죠.
역할이 조금 다른 것입니다.
스트리밍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입니다. 수많은 음악을 빠르게 발견하고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바이닐은 그중 마음에 든 음악을 조금 다른 속도로 듣고, 하나의 물건으로 곁에 두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바이닐의 인기를 단순히 ‘옛날 물건이 다시 유행한다’는 복고 현상 하나로만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음악이 너무 쉽게 재생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한 장을 고르고, 꺼내고, 올리고, 뒤집어 듣는 행동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편리함이 넘치는 시대에 불편함도 하나의 취향이 된 셈이죠.
마무리
바이닐이 다시 사랑받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커다란 앨범 커버와 물리적인 소장감, 레코드를 직접 다루는 과정,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경험, 수집의 재미까지.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이런 요소들이 함께 바이닐만의 매력을 만듭니다.
그렇다고 스트리밍보다 바이닐이 더 우월한 음악 감상법일 필요는 없습니다.
밖에서는 스트리밍으로 듣다가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 하나 더 생긴다고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조금 더 신기한 곳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레코드판의 홈에 어떻게 노래와 악기 소리가 들어가고, 바늘은 어떻게 그것을 다시 음악으로 바꾸는 걸까요?
바이닐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꽤 궁금해질 만한 이야기입니다.
FAQ
Q. 바이닐과 LP는 같은 뜻인가요?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닙니다. Vinyl은 레코드 제작에 사용되는 재료에서 비롯되어 오늘날 레코드 음반을 폭넓게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LP는 Long Playing의 약자로 특정한 레코드 포맷을 뜻합니다. 따라서 일상에서는 비슷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하게는 기준이 다른 말입니다.
Q. 바이닐은 디지털 음원보다 무조건 음질이 좋은가요?
그렇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마스터링, 프레싱 상태, 재생 장비와 청취 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바이닐 특유의 재생 특성을 선호하는 것과 객관적으로 모든 디지털 음원보다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바이닐을 들으려면 반드시 턴테이블이 필요한가요?
레코드의 홈을 실제 소리로 재생하려면 이를 읽어낼 수 있는 재생 장치가 필요합니다. 흔히 턴테이블이나 레코드 플레이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두 이름도 정확히 같은 장치를 뜻하는지는 조금 따져볼 부분이 있습니다. 이 차이 역시 별도의 글에서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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