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판에는 어떻게 소리가 저장될까? 바늘이 음악을 읽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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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판을 처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검은 원판 위에는 빽빽한 선이 있을 뿐인데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놓으면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고, 드럼이 들리고, 기타와 피아노까지 재생됩니다.

파일이 들어 있는 메모리도 없고 인터넷에 연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 얇은 레코드판 안에 음악은 대체 어디에 들어 있는 걸까요?

답은 표면에 보이는 수많은 선에 있습니다.

우리가 선처럼 보는 것은 실제로는 레코드판을 따라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아주 미세한 소리골(groove)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홈의 변화를 바늘이 따라가면서 음악 재생이 시작됩니다.

레코드판의 선은 사실 하나의 긴 소리골이다

LP를 밝은 곳에서 기울여 보면 표면을 따라 수많은 원이 겹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레코드의 한 면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서로 떨어져 있는 수많은 원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긴 나선형 소리골입니다.

음악이 시작되는 바깥쪽에 바늘을 올리면 레코드가 회전하면서 바늘은 이 홈을 따라 조금씩 중심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앞 글에서 살펴본 33⅓ RPM과 45 RPM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서 연결됩니다. 레코드가 정해진 속도로 돌아가야 바늘이 소리골에 기록된 변화를 원래 의도된 속도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골은 단순히 바늘이 지나갈 길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홈에는 음악의 파형에 대응하는 아주 미세한 변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음악을 녹음해 레코드용 마스터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소리의 전기적 신호를 이용해 이러한 변화를 물리적인 홈의 형태로 기록합니다. 완성된 레코드에서는 반대로 그 홈을 따라가며 다시 신호를 얻어냅니다.

즉 레코드는 음악을 숫자로 저장하는 디지털 파일과 달리 물리적인 형태의 변화로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아날로그 매체인 셈입니다.

바늘은 음악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턴테이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품 중 하나는 레코드 위에 내려놓는 바늘입니다. 보통 이 바늘 끝부분을 스타일러스(stylus)라고 부릅니다.

스타일러스의 끝은 레코드의 소리골을 따라 움직입니다.

홈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움직임도 단순하겠지만, 실제 소리골에는 음악에 따라 미세한 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타일러스가 그 길을 따라가면서 아주 작은 진동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바늘 자체에서 우리가 듣는 음악이 크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스타일러스에서 발생한 기계적인 움직임은 카트리지(cartridge)로 전달됩니다. 카트리지는 이 작은 움직임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턴테이블의 앞부분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바늘 하나’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러스와 카트리지 등이 함께 구성되어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과정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레코드의 소리골 → 스타일러스의 움직임 → 카트리지의 전기 신호 → 증폭 → 스피커의 소리

검은 원판에 새겨진 작은 물리적 변화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돌아오는 과정입니다.

스테레오 음악은 하나의 홈에 어떻게 들어갈까?

여기서 조금 더 신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듣는 많은 레코드는 왼쪽과 오른쪽 채널이 구분되는 스테레오 음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소리골에서 어떻게 좌우 두 채널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스테레오 레코드의 홈에는 양쪽 벽의 움직임을 이용해 두 채널의 정보가 기록됩니다. 흔히 설명할 때 홈의 양쪽 벽이 각각 약 45도 방향을 이루는 45/45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스타일러스가 홈을 따라 움직이면 단순히 좌우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홈에 기록된 변화에 따라 복합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카트리지는 이 움직임으로부터 왼쪽과 오른쪽 채널에 해당하는 신호를 얻어냅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홈 하나를 따라가는 과정에서도 스테레오 음악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알고 레코드를 다시 보면 표면의 가느다란 홈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구조 안에 좌우 채널의 음악 정보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바늘에서 나온 신호가 바로 스피커로 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두면 턴테이블 구조를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카트리지가 만들어내는 신호는 일반적인 오디오 기기에서 다루는 라인 레벨 신호에 비해 매우 작습니다. 그래서 많은 턴테이블 시스템에서는 포노 프리앰프(phono preamp)라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포노 프리앰프는 카트리지에서 나온 작은 신호를 적절한 수준으로 증폭하는 동시에, 레코드 제작 과정에서 적용된 주파수 특성을 재생에 맞게 보정합니다.

현대의 일부 턴테이블에는 이 포노 프리앰프가 기기 안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별도의 포노 입력이 있는 앰프나 외장 포노 프리앰프를 사용하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그래서 턴테이블을 스피커에 연결했는데 소리가 지나치게 작거나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경우에는 단순히 볼륨의 문제가 아니라 포노 증폭 단계가 갖춰져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코드 한 장을 듣기 위해 생각보다 여러 단계가 함께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코드에서 ‘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유도 홈과 관련 있다

레코드를 듣다 보면 디지털 음원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툭, 틱, 지직.

이런 소리를 모두 레코드 음악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스타일러스가 레코드의 물리적인 홈을 직접 따라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먼지나 오염, 표면의 흠집, 정전기, 레코드와 바늘의 상태 등이 재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소리골에 먼지가 있다면 스타일러스 역시 그 영향을 받을 수 있고, 표면이 손상되어 있다면 그 부분을 지날 때 잡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코드 관리에서 표면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스타일러스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흔히 생기는 오해도 하나 있습니다.

레코드 특유의 지직거리는 잡음이 곧 ‘아날로그의 따뜻한 소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코드의 음색과 재생 특성은 녹음과 마스터링, 프레싱, 카트리지, 턴테이블과 오디오 시스템 등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습니다. 표면 잡음은 그와 별개의 현상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LP에서 지직거리는 소리는 왜 날까?’라는 질문으로 따로 살펴볼 만합니다.

작은 홈에서 음악이 다시 시작된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들을 때는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레코드는 조금 다릅니다.

판을 꺼내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회전 속도를 맞추고, 바늘을 내려놓는 과정이 눈앞에서 그대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스타일러스는 눈으로 구분하기도 어려운 작은 홈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소리골에 기록된 물리적 변화가 바늘의 움직임이 되고, 그 움직임이 전기 신호로 바뀌고, 다시 스피커를 움직여 소리가 됩니다.

레코드를 이해하는 재미는 바로 이 과정에 있습니다. 음악이 추상적인 정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물체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LP를 한 장 꺼낸다면 음악을 재생하기 전에 빛에 비춰 표면을 한번 바라봐도 좋습니다.

그저 빽빽한 선처럼 보였던 곳이 사실은 바늘이 음악을 찾아가는 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레코드판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겁니다.


FAQ

Q1. 레코드판의 홈에 실제 음악이 들어 있는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소리 자체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신호에 대응하는 물리적인 변화가 소리골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타일러스와 카트리지가 이 변화를 다시 전기 신호로 바꾸고, 증폭과 스피커를 거쳐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됩니다.

Q2. 레코드 바늘과 카트리지는 같은 건가요?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바늘이라고 부르는 스타일러스는 레코드의 홈과 직접 접촉하는 부분이고, 카트리지는 스타일러스의 움직임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입니다. 실제 턴테이블에서는 두 부분이 함께 작동합니다.

Q3. 레코드의 지직거리는 소리도 원래 녹음된 소리인가요?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먼지, 정전기, 표면 오염이나 손상 등 물리적인 재생 환경 때문에 잡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레코드에서 들리는 표면 잡음을 모두 원래 음악에 포함된 소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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