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숍에서 음반을 꺼냈는데 판이 검은색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새빨간 레코드도 있고, 투명한 레코드도 있습니다. 두세 가지 색이 섞여 대리석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페인트를 뿌린 것처럼 여러 색이 퍼진 레코드도 있습니다.
심지어 레코드 전체에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간 음반도 있습니다.
보통 이런 음반을 컬러 바이닐(colored vinyl)이라고 부릅니다.
특별판이나 한정판 음반에서 자주 보이다 보니 이런 궁금증도 따라옵니다.
“색만 다른 걸까?”
그리고 조금 더 찾아보면 거의 반드시 다음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컬러 바이닐은 검은색 LP보다 음질이 안 좋은가?”
결론부터 말하면 레코드의 색 하나만으로 음질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모든 컬러 레코드가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일반적인 컬러 바이닐과 픽처 디스크(picture disc)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검은색 레코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바이닐 레코드는 원래 검은색일까?
우리가 흔히 ‘바이닐’이라고 부르는 현대적인 레코드는 주로 PVC(polyvinyl chloride, 폴리염화비닐)를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레코드가 검은색인 것은 PVC라는 이름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색이 아닙니다.
레코드 제조에는 PVC를 기반으로 한 재료에 여러 첨가제가 사용되고, 전통적인 검은색 레코드에는 카본 블랙(carbon black)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검은색은 오랫동안 레코드의 가장 익숙한 모습이 됐습니다.
사실 레코드 역사에서 색이 들어간 음반 자체가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회사가 음반이나 시리즈를 구별하고 시각적인 특징을 주기 위해 다양한 색의 레코드를 제작했습니다.
즉,
검은색 = 진짜 레코드
다른 색 = 최근에 생긴 장식용 레코드
라고 나누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컬러 레코드에도 꽤 긴 역사가 있습니다.
컬러 바이닐의 색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레코드를 만드는 기본적인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음악이 담긴 마스터에서 금속 스탬퍼를 만들고, 레코드 프레스에서는 가열된 바이닐 재료를 스탬퍼 사이에서 높은 압력으로 눌러 홈을 형성합니다.
검은색 대신 다른 색의 재료를 사용하면 컬러 바이닐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색만 사용하면 빨강, 파랑, 노랑처럼 비교적 균일한 solid color vinyl을 만들 수 있고,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재료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 종류가 많아집니다.
두 가지 이상의 색을 섞어 대리석 같은 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색을 나눠 배치하기도 합니다. 작은 색 조각을 흩뿌린 뒤 압착하면 스플래터(splatter) 바이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앨범인데
Black VinylRed VinylClear VinylMarbled VinylSplatter Vinyl
처럼 여러 버전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음악은 같은데 판을 꺼내는 순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레코드가 단순한 음악 저장 매체를 넘어 소장하는 물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와도 잘 맞습니다.
같은 스플래터 바이닐인데 무늬가 조금씩 다른 이유
컬러 바이닐의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사진에서 본 것과 실제 제품의 무늬가 완전히 똑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여러 색을 섞거나 흩뿌려 만드는 방식에서는 프레스에 들어가는 재료의 배치와 섞임에 따라 각각의 결과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블이나 스플래터 레코드는 같은 에디션이라도 무늬가 미묘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이건 인쇄된 이미지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재미입니다.
커버 아트는 같은데 안에 들어 있는 레코드의 색 배치는 내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이 조금 다를 수 있는 것이죠.
다만 모든 컬러 바이닐이 이런 개별적인 차이를 크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단색 레코드는 비교적 균일하게 보일 수 있고, 제작 방식에 따라 패턴의 차이가 크거나 작을 수 있습니다.
투명 바이닐도 컬러 바이닐일까?
음반 설명을 보다 보면 Clear Vinyl이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합니다.
말 그대로 투명하거나 반투명하게 보이는 레코드입니다.
엄밀하게 ‘컬러’라는 말만 생각하면 색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음반 시장에서는 검은색 표준판과 구별되는 변형 바이닐의 한 종류로 함께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명 재료에 색을 넣어
clear red, transparent blue, translucent green
같은 형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빛을 통과시키면 색이 훨씬 선명하게 보이는 레코드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음악을 듣기 전에 창가에 한번 들고 가보고 싶어집니다.
다만 레코드는 열과 직사광선에 민감할 수 있으니 감상은 짧게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픽처 디스크는 컬러 바이닐과 같은 것일까?
여기서는 중요한 구분이 하나 필요합니다.
픽처 디스크(picture disc)입니다.
픽처 디스크는 이름 그대로 레코드 표면에 사진이나 그림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음반입니다.
겉으로 보면 가장 화려한 컬러 바이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일반적인 단색 컬러 바이닐과는 제작 구조가 다를 수 있습니다.
픽처 디스크는 보통 인쇄된 이미지 층을 포함하고, 그 위에 실제 재생 홈이 형성되는 투명한 재생층을 두는 식의 구조로 제작됩니다.
따라서 색소를 넣은 PVC 재료 자체를 프레스해 만드는 일반 컬러 바이닐과는 같은 것으로 묶어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 차이는 음질 이야기를 할 때 특히 중요합니다.
컬러 바이닐의 음질을 검색하다가
“색깔 있는 레코드는 원래 소리가 안 좋다.”
라는 이야기를 발견했다면, 일반 컬러 바이닐과 픽처 디스크에 관한 경험이 뒤섞여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컬러 바이닐은 검은 LP보다 음질이 나쁠까?
가장 궁금한 부분입니다.
컬러 바이닐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은색 레코드보다 무조건 음질이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레코드의 실제 재생 결과에는 훨씬 많은 변수가 영향을 줍니다.
어떤 음원을 사용했는지, 어떻게 마스터링했는지, 레코드용으로 어떻게 커팅했는지, 어느 공장에서 어떤 조건으로 프레싱했는지, 프레스 품질 관리가 어땠는지 등이 모두 중요합니다.
같은 앨범의 검은색판과 컬러판이 같은 마스터와 같은 커팅을 사용했는지조차 발매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두 음반을 비교해서 소리가 다르다고 해도 그 차이를 곧바로 색소 하나의 영향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재생하는 턴테이블, 카트리지, 스타일러스와 시스템도 당연히 영향을 줍니다.
즉,
Black = 무조건 고음질
Color = 무조건 저음질
이라는 공식은 없습니다.
좋은 컬러 프레싱도 있고 문제가 있는 검은색 프레싱도 있을 수 있습니다.
색깔은 눈에 가장 먼저 보이기 때문에 원인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레코드의 소리는 그렇게 한 가지 요소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픽처 디스크의 음질 이야기는 왜 다를까?
픽처 디스크는 조금 별도로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일반 컬러 바이닐과 제작 구조가 다를 수 있고, 이미지 층 위의 재생층에 홈을 형성하는 구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일반적인 바이닐 프레싱보다 표면 잡음이나 재생 품질 면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평가가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픽처 디스크는 특히 시각적인 소장 가치가 강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픽처 디스크는 전부 소리가 나쁘다.”
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조 기술과 프레싱 품질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 컬러 바이닐과 픽처 디스크를 똑같은 구조라고 생각하고 음질을 논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둘의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도 컬러 바이닐에 관한 많은 오해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컬러 바이닐에서는 바늘 위치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색은 소리 외에도 실제 레코드 사용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검은 레코드를 빛에 비춰보면 곡과 곡 사이의 비교적 넓은 간격, 즉 트랙 밴드(track band)를 눈으로 찾기 쉬운 편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곡부터 듣고 싶다면 그 위치를 보고 톤암을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투명하거나 매우 밝은 색, 복잡한 스플래터 패턴의 레코드에서는 이 경계가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수동 턴테이블에서 특정 트랙을 골라 바늘을 내리려면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실제로 레코드를 사용해보면 이런 부분이 오히려 먼저 체감될 수도 있습니다.
색깔은 단순히 진열했을 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정판이라는 말도 따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컬러 바이닐은 흔히 Limited Edition이라는 문구와 함께 판매됩니다.
그래서 컬러 바이닐 자체가 곧 한정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둘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컬러 바이닐은 레코드의 색이나 외형에 관한 설명이고, 한정판은 생산이나 판매 수량 등에 관한 설명입니다.
대량으로 제작되는 컬러판도 있을 수 있고, 검은색 레코드가 한정판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같은 앨범을 빨강, 파랑, 투명 등 여러 색으로 나누어 판매하기도 합니다.
레코드를 수집하다 보면 이 부분부터 조금 위험해집니다.
음악 한 장을 사러 갔는데 같은 앨범이 다섯 색으로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색은 다섯 개인데 음악은 하나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것은 음질보다 통장의 문제에 가까워집니다.
검은색과 컬러 중 무엇을 사야 할까?
결국 선택 기준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좋아하는 색이나 앨범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 버전을 갖고 싶다면 컬러 바이닐을 선택해도 됩니다.
소장보다 재생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면 색 자체보다 해당 프레싱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 더 유용합니다.
같은 앨범이라도 발매 연도와 국가, 사용한 마스터와 커팅, 프레싱 공장 등에 따라 서로 다른 판본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이 목적이라면 검은색 표준판도 충분합니다.
컬러 바이닐이 더 고급인 것도 아니고, 검은색 바이닐이 더 진짜인 것도 아닙니다.
둘 다 레코드입니다.
다만 컬러 바이닐은 음악을 듣는 물건에 시각적인 즐거움 하나를 더 얹어놓은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마무리
컬러 바이닐과 일반적인 검은색 레코드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말 그대로 색과 외형입니다.
검은색 레코드에는 전통적으로 카본 블랙이 사용되어 왔고, 다른 색의 재료를 이용하면 빨강·파랑·투명 같은 다양한 컬러 바이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색을 조합하면 마블이나 스플래터 같은 패턴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레코드의 색만 보고 음질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마스터링, 커팅, 프레싱과 품질 관리 등 더 많은 요소가 실제 재생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픽처 디스크는 일반 컬러 바이닐과 제작 구조부터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코드는 원래 음악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그런데 커버가 커지면서 앨범 아트가 중요해졌고, 이제는 판 자체까지 하나의 디자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검은 레코드를 꺼내는 맛도 있고, 빛에 비친 투명한 레코드를 보는 맛도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조금 다른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을 더 자주 턴테이블에 올리고 싶어지는가.
레코드는 듣는 물건이면서, 꽤 오래전부터 보는 물건이기도 했으니까요.
FAQ
Q. 컬러 바이닐은 검은색 LP보다 음질이 나쁜가요?
컬러라는 이유만으로 음질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재생 결과에는 마스터링, 커팅, 프레싱 품질과 재생 시스템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개별 발매판을 기준으로 살펴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Q. 투명 바이닐도 일반 턴테이블에서 재생할 수 있나요?
네. 정상적으로 제작된 투명 바이닐은 해당 음반의 지정된 회전 속도에 맞춰 일반적인 턴테이블에서 재생할 수 있습니다. 투명하다는 것은 주로 외형의 차이이지 별도의 전용 재생 방식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Q. 픽처 디스크와 컬러 바이닐은 같은 건가요?
같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일반 컬러 바이닐은 색이 들어간 바이닐 재료 자체를 이용해 제작하는 반면, 픽처 디스크는 인쇄된 이미지와 투명한 재생층 등을 이용하는 별도의 구조로 제작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음질을 비교할 때도 두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답글 남기기